탐석이야기 1 페이지 | 수석넷™

탐석이야기 1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 회원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 접속자 115
  • 쇼핑몰
  • 커뮤니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탐석이야기

Total 14건 1 페이지
  • 14
    작성자 호제 작성일 01-08 조회 646
     오래된 사진첩을 뒤적이다 발견한 수석사진하나 발견으로탐석했을때의 그 감정을 느껴본다이전에 탐석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가곤 했었다그러다 발견한 수석한점지금의 기억로는 영춘이나 영월 부근에 탐석한것 같다이 돌을 탐석한 순간가슴이 두근두근~~~~~탐석을 해 보신분만 느낄수 있는 두근거림, 감격, 흐뭇함이 보다 더한 행복감은 없어리라이것이 수석의 매력탐석의 느낌…
  • 13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4 조회 918
    작열하는 턔양볕 아래서 홀로 탐석하는 경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흔히 불교에선 옷자락 스침을 연이라 하여 윤회사상을 이야기하나 17년 전 대학 4학년 때 일이니 격세지감이다. 수석에 취미를 둔 후 가끔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에 몇 자 단상을 적어 본다.  내 고향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분기하며 인삼, 사과, 인견이 생산되고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내륙의 삼다도 풍기이다. 지금같이 산지가 고갈된 상태에선 죽령을 넘으면 단양이요, 옆동네가 점촌이니 이 보다 더 좋은 탐석조건을 갖춘 곳이 없겠으나 그땐 수석을 모르고 있을 때였다. 가끔 연세든 분들이 다방 앞에서 국방색 배낭과 돌덩어리를 들고 다니는 것은 보았으나 시골다방이란 젋은이에게는 드나들지 못할 치외법권 적인 장소였다. 그 시절 여름방학을 틈 타 천엽을 즐기며 단양팔경이나 돌자는 친구의 제안에 배낭을 꾸려 몇명의 악동들은 죽령을 넘었다. 상선암에 자리를 잡고 일박 한 후 단양역으로 나오는 길이였는지, 사인암으로 다시 들어 갈 때의 버스속에서 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국민학교 5,6학년 쯤 보이는 사내아이와 같이 돌수집(그 때 내 눈엔 그렇게 비쳤음)을 하는 40대 아저씨는 어제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것을 아느냐고 조그마한 트란지스터 라디오 다이얼을 연신 돌리며 물으셨다. 그것이 전부이며 그날이 1974년 8월 16일 오전이였다는 사실밖에 모른다.새삼스레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는 의미는 그 시절에 수석한 분들에 대한 부러움이며, 작금의 수석활동은 일부이긴 하나 금전적인 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나 하는 기우에서이다. 강따라 돌밭을 뒤지다가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물고기 잡아 찌게를 긇이며 소꼴비던 아이들과 어울려 저녁노을을 바라보던 80년대 초반만해도 그런데로 인정이 흐르던 때였다. 요사이 탐석을 떠날때면 견지 낚시 한대라도 옆에 꼽고 떠나고 싶으나 출발서 부터 도착할 때 까지의 빠듯한 일정에 여유를 가지 못한다. 수몰되어 호수로 변할 강바닥에선 포크레인 소리높고, 몰려든 봉고차의 대열은 불편했던 교통편이 한결 운치있던 여정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래도 일년에 두 세점은 탐석되던 것이 배낭에 돌집어 넣은지가 이미 오래며 돌가게에 가야 만 석우를 만날 수 있다. 거기에선 무슨 돌이 얼마에 팔렸으며 수반은 어느것이 좋고 화대는 어떻다는 이야기만 무성하지 탐석시의 짭짭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전시에 참석하면 돌보다 수반, 화대가 돋보여 돌이 부산물이 되어야 하는 전시공간. 그렇지만 좁아지는 산지에서도 얻어지는 명석은 있고, 늘어난 수석인중에서도 더 많고 진정한 수석인이 있기에 수석문화는 폭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의 넋두리는 예전보다 본인의 탐석열성이 줄어든 탓이며 좋게 보아주면 돌을 바라보는 안목이 높아진 탓이려니 하며 자위해야겠다. 지금은 수석에 대한 안목이 한층 더 깊어 지셨을 것으로 생각되는, 맥고자에 헐렁한 바지를 입었던 그 분은 몇점의 수석을 아끼며 탐석생활을 하시는지, 그 때의 국민학생은 청년이 되어 수석에 취미를 두고 부인과 함께 아버님을 모시고 같이 탐석을 떠나는지 궁금할 뿐이다. 월간수석 1991년 12월호에서출처: 풍우회 cafe.daum.net/54cheongun/…
  • 12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1052
    애석의 울림 영천 흑국석 -  김외수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천에 흑국이 탐석된다. 일반적으로 영천 흑국석이라 칭하는 이 돌의 특성은 소품이 많다는 것이다. 영천시에서 청송읍으로 통하는 35번 국도를 따라가다보면 화남면을 지나서 화북면으로 접어들수 있는데 도로 가까이 흐르는 뱃물이 자천천이다.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지만 자동차의 통행이 뜸해서 탐석이 전용길인것 마냥조용하다. 전에는 사과나무가 많았으마 요즘 건강식품으로 대추가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인가. 곳곳에 대추나무가 한창이다. 흑국석은 화북면 소재지의 자천중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하류로만 탐석이 가능하다 면 소재지 상류는 암반층 계곡이 라 풀밭으로 가득 차 탐석 할 만한 돌이 보이지 않는다. 영천 흑국석을 집어 들었을때 돌 속에 새겨진 꽃잎이 한 잎 한 잎 살아나는 그 묘한 설렘! 신공이 붓에 먹물을 찍어 화선지로 옮기다가 뚝 뚝 떨어뜨린 형상이다. 미완성의 작품처럼 느껴지지만 그림에 조애가 갚은 솜씨로 일반적인 선은 생략하고 숙달된 필치로 그려나간 뛰어난 재능의 흔적같다.  강바닥은 건천으로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 논 농사와 밭 농사를 위해서 물이 필요해 군데 군데 콘크리트 막(보막이)을 막아 물을 가두었기 때문이다. 이 보막이의 물이 넘칠때 낙하하면서 하천바닥을 뒤집음으로 가끔은 이 막을 살펴보는 것이 용이하다. 간혹 마른 풀밭 속에서 운동화를 신고 성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건초지엔 도깨비 바늘이 옷에 달라 붙으므로 탐석시에 막대나 갈구리의 휘저으며 다니면 용이하다. 자천천은 하루 종일 탐석하기에 짧은 천이므로 자천천 탐석을 마치고 하류쪽 화남면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곳에 가면 보막이에 웅덩이가 생겨 늪이나 소같이 물이 곳인 곳이 여러곳 있다.  이 곳 물속엔 붕어가 유별나게 많아 낚시나 철렵을 즐길 수 있으며 그리고도 시간이 나면 도덕산을 시발로하여 흐르는 고경면과 수성면 개울을 들리면 석질과 형태가 뛰어난 토파석을 탐석 할 수 있다. 이 천은 안강천의 반대쪽지류이다. 약수를 넣고 끌인 삼계탕이 식도락가의 입맛을 돋구는 곳도 있다. 또한 수질 좋기로 유명한 청송관광호텔 지역에서의 온천으로 하루 탐석의 피로도 씻을 수 있다.  출처: 1999년 월간애석 5월호 …
  • 11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725
     바다의 무한함을 일째워주는 중도리 해안 이곳은 탐석겸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해안을 끼고 도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의 비경 그 아래로 푸른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해변의 정경은 바다의 무한함과 영원함에 가슴이 젖는다.  검은 먹돌로 석질도 깐깐한 돌에서 수려한 산수경석과 광대한 대평원을 연상케 하는 평원석도 나온다. 완도읍에서 서쪽 방향 버스로 가다가 사정리 학교 앞에서 내린다. 여기서 앞산 모퉁이를 돌아 동남쪽으로 산길을 따라 7백m쯤 가면 울퉁불퉁한 갯가에 도달한다. 여기서 깎아지른 험준한 암벽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면 산지가 된다.   완도일대 산지  이 산지는 셋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구계동짝지쪽의 작은 애랭이 돌밭이고 또 하나는 동쪽으로 있는 큰 애랭이 돌밭이고, 마지막으로 엉덕아리 산지로서 모두세 곳이다 이곳 돌밭들은 커다란 바위틈 사이사이에 끼어 있던가 바위 밑에 숨어 있어 찬찬히 찾아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동그라미,둥근 것,해도 달도 지구도 다 둥글기 때문에 그 헤아릴수 없는 많은 나이인데도 죽지 않고 아직 청청하게 사는가 보다. 둥근원은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무한의 세계,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로 인간은 모가 없는 둥근 것이 좋아졌고 둥근 것은 어찌되었든 아름답다 이 둥근 돌만 모여 사는돌밭이 전남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 구계등 바닷가인데 작은 것은 바둑 알에서부터 큰 것은 축구공만한 돌들이 사이좋게 오손도손모여 산다. 완도읍에서 서쪽으로 5Km 떨어진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정도리에서 하차하여 바다쪽으로 약 3백m쯤 가면 거기 확 트인 바닷가 해안에 둥글둥글한 돌 들이 길게 펼쳐져 있다. 길이가 약 IKm,폭 80m 전개된 이 돌밭은 거의가 둥근 또는 타원형인 돌들이 올망졸망 바닷가를 메우고 있다. 작게는 어렸을 때 갖고 놀던 구슬만한 예쁘고 귀여운 것에서부터 탁구공 크기,야구공크기, 제일 큰 것은 축구공 크기까지 다양하다. 타원형의 돌도 메추리알만한 것에서부터 계란크기,타조알크기에서 럭비공크기로깔려 있다.  색상은 약간의 푸른색이 감도는 청회색과 짙은 회색, 먹빛의 검은색 등  돌 색깔도 다양하다. 질감도단단하여 정이 가는돌이다. 이돌을 현지 주민들은 구경짝지 또는 빠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돌이 파도에 밀리면 아흡 계단을 이룬다고 해서 이곳 이름을 구계등이라고 지었다한다. 완도는 섬이지만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광주에서부터 바로 들어오는 것이 편리하다. 해남에서 완도읍까지도 포장도로로 달리는 것이 쾌적하다. 그리고 목포 부두에서 완도로 운행하는 배 편도있다  출처: 월간애석 1999년 11월호 에서 발췌…
  • 10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759
     고금도 상정리 썩돌밑 사이사이에서 좋은 수석감을..이 섬은 주위 사면이 물과 섬으로 애워싸인 내도(內島)이므로 물살이 다른 섬처럼 세지 않아 갯돌(돌밭)이 섬 주위에 거의 없고 온섬이 갯벌이 아니면 황갈색 썩돌로 뒤섞여 있어 이 섬에 처음왔을때는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상정리 산지만은 이 섬 유일한 산지로서 상상을 뒤엎는 다양한수석감이 쏟아져 나와경악시킨 곳이다. 오랜 세월 갯벌에서 산회되어 침식작용도 받고 또 약한 부분이 마멸되면서 관통된 괴석류의 괴기스런 형상의 돌이 많이 발견된다. 우뚝우뚝 석순처럼 솟아오른 돌에서 태산의 연봉을 연상케하고 재미스런 형상을 갖춘 물형석도 신비롭다 다만 흠이라면 질감과 색상이 뚜렷하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크다. 여기서 산출되는 대부분의 돌은 거의가 밑자리가 인위적으로 알맞게 자른 듯 앉음새가 좋다. 특히 산수경석인 경우 밑자리가 칼자른 듯 나무판처럼 미끈하여 모래 없는 알수반에 놓고 관상해도충분하다. 이 돌밭은 해안을 끼고 약 3kn 정도 썩돌이 뒤덮인 비교적 큰 산지이다. 썩돌 사이사이와 돌 밑에 좋은 수석감들이 숨어있으므로 차분하게 찾으면 훌륭한 돌을 만날 수 있다. 이 산지에서는 여름보다 겨울철 탐석이 적기라고 보겠다. 왜냐하면 여름에는 파래 또는 여러 가지 해초가 돌위에 무성하게 뒤덮고 있어 수석감을 식별하기에 곤란하고 피곤하다. 이섬은 지도상으로는 완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나 생활권은 오히려 강진 마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배편도 이쪽에서 구하는 것이 편리하다. 완도읍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는 약 10Km이며 배를타고 약40분가면 된다. 파도가 밀릴때마다 모래가 운다는 신지도 명사장 이곳은 유명한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새하얀 백사장 길이가 4Km여에 펼쳐져 있다. 은빛 고운모래가 파도가 밀릴 때마다 운다고 하여 명사십리 (明沙十里)라 부르며 한여름 피서 관광지로서는 전남 해수욕장 중에서 으뜸으로 꼽는다. 산지는 명사장 중간지점에서 약 2Km의 모래 밭끝까지 상하 두줄로 돌밭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한 곳은 마을 선착장을 지나 바닷가로 약 lKm이상 바위틈에 끼어 있는 돌들을 탐석할 수 있다. 이곳 산지는 계절에 따라 큰 변화가 있는데 여름철은 돌밭이 거의 하얀 모래 속에 파묻혀 극히 소수의 돌뿌리만 보이고 반면 겨울철에는 이상하게도 덮었던 모래가 씻은 듯이 걷히면서 광활한 돌밭이 노출된다. 검은 묵석이 대부분 덮여 있고 가지가지의 형으로 이루어진 수석감이 심심치 않게 눈을 빛나게 한다. 다양한 그림의 문양석도 눈길을 끈다. 교통은 이 섬으로 가는 정기여객선은 없고 낚시배를 빌려 탈 수 밖에 없다. 완도읍에서 동쪽으로 7Km 정도 뱃길로 25분 가량 가면 산지도 선창가에 닿는다. 은빛 고운 모래가 눈처럼 덮인 신지도 해수욕장 완도읍에서 동쪽으로 7Km 배로 25분 정도 가면 신지도 신지리의 남쪽 해안 백사장이 나타난다. 은빛 고운 모래가 눈밭처럼 하양게 일직선으로 뻗어 있어 조금 단조로우면서도 쭉 뻗은 시원함이 있어 나름대로의 무드가 있는 해변이다  백사장의 넓이는 400m,길이는 4Km의 광활한 해수욕장이다. 백사장 길이가 십리이고 밀리는 파도에 모래가 운다고 하여 명사십리라 부르며 또 이곳을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이라고도 한다. 모래가 부드럽고 고와 밟으면 마치 눈길을 걸을 때처럼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주변의 경관도 아름답고 바로 앞에는 바다,위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오손도손 사이좋게 떠 있어 큰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그리고 해수욕장 주변이 훌륭한 바다 낚시터로 도미, 아나고, 해삼, 전복 등 해산물이 많이 나와 싱싱한 생선을 먹을 기회도 주어 진다. 숙박은 모래사장 뒷편에 30동의 임대용 건물에 300개의 방이 있어 편리하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임촌부락에서 민박도 할 수 있다. 청산도 모래사장에 조개마냥 숨은 돌을  청산도(좁山島)는 위도, 나로도와 더불어 전남 삼대어장의 하나로 많은 고깃배들이 모이고 흩어지고 선창가에서는 만선의 꽹과리 소리 요란스럽고 고기철에는 파시의 흥청거림과 웃음소리가 섬 안을 흔든다. 산지는 섬 안에 근래 개장한 지리 해수욕장 부근 일대가 바닷가이다. 부드럽고 고운 모래사장에도 표피가 말끔히 예쁘게 다듬어진 돌들이 조개 마냥 모래 속에 폼을 숨기고,어느 마음 착한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청산도는 지리 해수욕장을 기점으로 섬 주위 일대가 산지라고 보야야겠다. 해안을 끼고 섬 모서리를 돌 때마다 굽이 굽이 돌들이 숨박꼭질하고 있다. 묵석과 청석이 주로 많이 산재되어 있고 특히 동그란 원석 (圓石)도 이채롭다. 완도의 구계동 원석처럼 질감과 색감이 양호한 둥근 돌들이 먼 옛날 공룡의 알처럼 딱딱하게 응고되어 딩굴고 있다. 탁구공처럼 작은원석에서부터,야구공,축구공 크기의 돌까지 한데모여 모난데 없이 그저 순하게 둥글게 둥글게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산수경의 수려한 돌도 나오지만 문양석도 빼놓을 수 없다. 천연의 그림 신사(빼以)의 신필이 그린 석화의 신기는 정말 경이롭다. 완도에서는 뱃길로 llKm,l시간 20분이 소요된다. 글, 이연근출처> 월간애석 1999년 11월호 에서  …
  • 9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939
     연천군 전곡면 전곡리 한탄강변을 따라 4Km 정도 펼쳐져 있는 한탄강 유원지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고 나서부터 더 활기찬 유원지로 탈바꿈되어 온갖 편의시설은 물론 팔각정을 비롯해 수십채의 방갈로까지 세워져 있다. 울창한 미류나무숲과 포플러숲은 다른 곳에서는 잘볼 수 없는 서구적인 풍경으로 나무 밑에 놓여진 벤치는 매우 로맨틱하다. 물이 맑고 고기들도 떼지어 놀고 있고 강변의 경치가 절경을 이루는 풍치지구이다. 여름 한철 강변의 낭만과 천렵의 즐거움을 크게 맛 볼 수 있는 한탄강 유원지 일대는 강변 공원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유원지 옆에 높다랗게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전곡 철교, 그 주변에 깎아지른 절벽과 계곡의 우람한 자연미,반짝이며 흐르는 푸른 물살, 한더위 때는 아이 어른 할것 없이 물 속으로 풍덩 들어가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시절’을 되새기게 하는 고향의 정든 강처럼 그리움을 주는 강이다 보트를 타고 푸른물을 하얗게 가르며 다니는 즐거움도 유별나고 곳곳에 있는 쏘가리 ,메기등의 매운탕과 장어구이에 소주 한잔 음미하는 음식점도 많아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는 좋은 곳이다. 이 강변에는 예쁜 조약 돌들이 많이 깔려있어 돗 자리를 펴지 않아도 깨끗한 휴식 공간이 많아 즐거움을 더 해준다. 기차편으로 성북역에서 경원선 열차를 타고 한탄강역에서 내린다. 버스는 상봉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전곡행 직행과 완행이 수시로 있다 (소요시간 1시간50분) 밤나무골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찾아 이곳은 밤나무골 산지와 강 건너편 초성리 산지가 마주보고 있다. 이곳 역시 상류 돌밭인 통제, 고포리,은대리와 지질분포나 석질이 거의 비슷하다. 화산에서 쏟아져 나온 용암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풍화되고 산사태로 강에까지 유전되면서 깎이고 다듬어져 오늘날 훌륭한 수석감으로 재생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제주도의 용암보다는 색감이나 질감이 월등하고 석질도 단단해 보인다. 검은 묵석의 곰보돌을 위시하여 오랜 세월 청태가 낀 듯 옛 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푸르른 청석과 고향의 옛 내음을 물씬 풍기는 흑갈색의 돌과 가끔 아름다운 무늬결이 예쁘게 어우러져 있는 문양석도 감초 마냥 끼어 있다 형태별로는 괴기스럽고 오묘한 형태의 괴석이 미불의 괴석도를 연상케 하고 산세좋은 태산준령의 산수경석과 원초의 신선한 물이 아직도 고인 듯한 호수석,그리고 실존하는 모든 물형과 닮은 형상석, 추상석 등도 탐석된다. 그리고 이 산지에서 위로 상류까지 구석기 시대의 유물도 자주 출토되고 있다. 돌도끼,돌칼,돌절구 등이 많이 발견되었다. 서울에서 의정부를 거쳐 전곡 못미쳐 한탄강 유원지 다리 밑으로 내려가면 된다.   이 먹돌의 중후한 석질에서 투가 조화있게 고태스런 운치를 돋구어 주는 산지에서는 괴석들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물씻김이 잘 된 이 돌에서 선의 흐름이 유연하고 곡선미가 넘치는 추상석과 형상석 그리고 원산석의 경석도 나온다. 이 돌 외에도 짙푸른 빛깔의 청석과 초콜릿 빛깔의 갈색, 때로는 예쁜 빛깔의 문양석도 나온다. 이런 류의 돌에서 산수경석 특히 호수경의 물고임돌이 나와 처음에는 놀라고 두번째는 기쁨에 들떠 하늘이 찢어져라만세를부르게 한다. 산속 갚은 심곡에서 흘러내려 한 곳에 티없이 맑은 벽계수가 호수가 된다. 호수하면 우선 정지 된 고요를 느끼게 하며,번거롭던 마음도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 차분히 가라앉게 된다. 폭포석이 동적(動的)이라면 호수석은 정적(靜的)인 고요하고 조용한 돌이다. 푸른 산그림자가 한쪽에 그림처럼 물들어 있고,거울같은 수면위에 목화송이 같은 뭉게 구름이 수놓듯 점점이 아루 새겨지는 한가로운 낭만, 그 고요한 호심에 속된 마음을 묻어버리고 조용히 호수석이란 어떤 것인가알아보자.  호수석이란 자연적으로 산형의 돌 정상 부분 또는 산복에 웅덩이가 패여져 물이 흠빽 고인 산형의 돌로서 담이나 호수 또는 연못을 연상케 하는 돌이다. 여기서 다시 호수석을 자연경의 풍치에 따라 물이 고인 상태에 따라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호수형(湖水形)은 수려한 산봉우리가 에워싼 산허리 한쪽에 물이 괴여 태고의 신비를 먹음은 듯 조용하고 고요한 호수를 연상시키는 형을 일컴는다. 호수를 이루는 물웅덩이는 천연으로 패여져 있는 것이 절대조건으로 인공으로 만든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운치 있게 정취가 풍기는 호수석이란 호수에 접해 있는 원산과 평지가 균형과 조화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담형u豊形)은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처럼 산정상 어느 한쪽에 움푹 패여 물이 담긴 형이다. 대개의 경우 원형 모양의 큰 웅덩이가 많은데 이때는 수석 전체의 정경보다는 웅덩이의 깊이와 넓이 크기 그리고 웅덩이 주변의 변화 등이 관상의 주안점 이 된다.  셋째, 지형(地形)은 산자락 한모퉁이나 들판 한쪽에 작은 웅덩이가 패여 늪이나 연못을 연상시키는 형을 말한다. 연꽃이 화사하개 피어 떠있는 연못을 연상시키는 것도 있지만 아무 모양 없이 그저 물만 고이는 돌도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옹달샘도 되겠지만 어쨌든 돌에 물이 괴었다 면 태고의 신비가 담긴 것 같아 어떤 형태이든 애완 할 만한 돌 이다. 그리고 이곳 돌밭에서는 때때로 구멍이 신기하게 뚫려 오묘한 멋을 느끼게 하는 괴석이 나오고 오랜 세월감을 느끼게 하는 탑석도 심심치 않게 반겨 주고 있다 이곳 산지 바로 위 상류 돌밭이 고포리 산지가 되고 이 산지 강건너편이 통제 산지가 된다. 통제 산지는 전곡에서 연천쪽으로 가다 도중에 하차하면 되고, 고포리, 은대리 산지는 전곡에서 청산 쪽으로 가다 나무다리를 지나자마자 우회전 하면 다리 밑으로 길이 있고 이 길따라 가면된다  자료: 월간애석 1999년 5월호  …
  • 8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954
     산지는 경남 고성군 송화면 배둔리 쩍산일대와 통영군 용남면 일대로 매우넓다토중 용석은 주로 적갈색의 산화토에 묻혀 둘러싸여 있으므로 이 표피를 제거하기 전에는 어떤 형태의 모양을 갖춘 것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산지에서 취사 선택이란 곤란하고 일단 심중으로 선택하여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용석의 특색은 돌의 피부가 깨끗하고 윤택이 나며 용석만이 갖추고 있는 특유한 줄이 종횡으로 뻗어 유연하고 심오한 산수경석이 주로 많이 산출되며 그 위에 형상석,괴석 등 다양한 형태가 출토되고있다. 해중용석 상층부에서도 오랜 세윌 바닷물과 빨에 산화되어 천차만태의 기를 다한 괴석류와 형상석이 나오며 심층부에는 천공이 빚은 듯 신기의 수봉이 겹산으로 중첩되어 그 준험한 산용의 형태는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듯 절묘한 산수경석이 나오고 또한 우렁찬 폭포석도 이름 있다. 이곳은 용석맥 속에 때로 하얀 차돌(石英)이 골짜기 갚숙이 박혀 있어 빼어난 폭포석을 선사하고있다. 용석의 색상은 산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대체로 진흙의 검은 색상이며 때로는 진회색 또는 짙은 포도색도 가끔 있다. 이런 바탕의 색은 귀티가 나고 격조가 높아 운치를 찾는 수석인들의 호감을사고있다. 용석의 경도는 3도에서 5도 사이이며 형각의 강한 부분은 6도에 이르는 것도 있다. 용석의 중요 성인은 니판암과 점토질의 혼성으로 주고 수성암,성암,적암 등의 계열암층에서 생긴다. 이 산지는 토중용석의 명산지로서 용석의 맥이 육지의 토중에서부터 바다의 해중까지 뻗어 있으며 산지의 분포도 넓어 고성군 송화면 배둔리 쩍산(해발550m)을 구심점으로 하여 동서남북 사방으로뻗어 있다 산지 분포를 보면 동으로는 창원군 진전면에서 진동면 일때까지 뻗어 있고 서쪽으로는 하이면 상족마을까지 이며 남으로는 동해면 거류산을 거쳐 통영시 용남면까지 산재하며 북으로는 구만면에서 개천면을 거쳐 보양군 금욕마을까지 분포 되어 있다 이처럼 광활한 산지이기 때문에 우선 산지 선정부터 잘 해야 되겠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천변이나 골짜기 또는 해변에서 쉽게 탐석할 수 있었으나 그 동안 많은 동호인들이 다녀갔기 때문에 지금은 토중이나 해중에서 찾아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용석 탐석은 우선 용석맥을 발견하여 형해의 석소를 찾아야 한다. 그 속에는 각양각태의 알돌이 10여점 쏟아져 나오는데 여기서 한두 개의 좋은돌이 나오게 마련이다. 흙투성이의 네모 반듯한 원석을 처음볼 때는 무슨 형상의 어떤 경이 나올까 싶은 의아심이 앞선다. 해중이나 토중의 용석은 거의가 산화토에 싸여 있기 때문에 그 산화토를 먼저 벗겨내야만 형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해변의 정취가 낭만과 더불어 버들레 산지에  산과 바다가 멋지게 어울려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생생하게 보는 듯한 해변의 낭만과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이 버들레 마을의 위치는 고성읍에서는 남쪽으로 약 16km 지점이고 충무에서는 배편으로 약1 시간가량거리이다. 이곳 산지 근방의 지질은 중생대의 지층으로 많이 퇴화되었으며 경상계의 퇴적암도 많이 쇠약 해진 곳으로 그 대신 유문암이 다량 분포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 주변 산과 들에는 광맥이 많이 뻗어 있으며 단단한 석질의 색감 좋은 청석이 많이 덮여 있다 질감 있는 경석류를 가끔 탐석할 수 있으나 많지는 않고 이곳의 특산물이라면 파란 청석에 하얀 석영이 아롱지게 그려져 있는 문양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청백의 대비가 조화 있게 잘 어우러진 무늬 돌들이 삼라만상과 닮은 모습을 표출하고 있으며 , 혹은 추상적인 환상의 무늬도 잘 그려져 있다. 그리고 여기 산지에서는 고귀한 적옥석(#玉石)도 때때로 발견된다. 석운이 있으면 아름다운 적옥석의 찬란한 색채를 볼 수도 있는 곳이다.  글. 이연근 자료출처: 1999년 월간애석 10월호  …
  • 7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545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한탄강 중류 강변에 위치한 고석정은 신라 진평왕때 건립된 10평 정도의 2층 누각으로서 6·25동란시 소실되었던 것이 1971년 이 지방 유지들의 협력에 의해 다시 재건된 정자이다  고석정이란 명칭의 유래는 누각 앞 한탄강 중앙에 10여 미터 높이의 기암이 홀로 고(孤)자와 흡사한 모양으로 서 있다고 하여 부르게된 이름이다 이 곳은 조선조 명종때 임쩍정이 성벽을 수축하고 의적당을 거느리며 활약하던 곳으로 유명하며 지금도 강심에 있는 10미터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쩍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 석실이 있고 건너편에는 석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이곳 주변은 맑고 푸르른 강물과 기묘한 형상을 지닌 기암괴석들이 주위의 수목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비경을 연출하고 있는 곳이다. 철원팔경의 하나로 꼽히며 연중 끊일 사이 없이 관광객이 몰려 드는곳이다. 천하절경이 전개되어 있는 영평천산지 영평천 주변 도처에는 절경 절승의 명승지가 산재되어 있다. 화적연(未積淵)을 위시하여 선유담(仙遊澤) ,금수정 (金水享) ,와룡암(歐龍岩)등 여넓개의 비경을 영평팔경이라 부르며 옛부터 풍류객들이 즐겨 드나들었고 요즈음은 자연을 즐기는 관광객과 수석을 즐기는 탐석인의 발걸음이 잦은곳이다.이 산지에서는 천하절경을 관상도 하고 탐석도 할수 있는 곳으로,우선 산지인 오가리에 자리한 창옥병(蒼玉햄)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우뚝 서 반월형으로 주위를 에워싸고 있어 그 장엄하고 우아한 풍치는 기승으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역시 산지 강변에 세워진 금수정은 순 은 행나무로만 지은 정자로서 약 370년 전에 지었던 것을 백년 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질감 있는 청석과 검은 먹돌, 그리고 흑갈색의 돌들이 골고루 섞여 있다. 삼팔교 다리를 기점으로,하류로 오가리 산지와 상류로 이동 방향 돌 밭이 산지가된다. 산수경을 비롯해 괴석, 형상석, 추상석 등 다양하게 나온다. 의정부에서 승차하여 포천을 지나 양문에 도착하여 조금 더 가면 삼팔교가 있다. 이 다리 밑 상하류가 산지이다. 글, 이연근 출처: 월간애석 1999년 6월호 중에서 발췌 영고성쇠(榮抽盛훌)와 그 옛날 그 화려했던 웅장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제 수천년을 찬비에 깎이고 찬바람 모진 서리에 부스러져 덧없는 세월만 읽게 하는고, 고풍(古風)감 도는 층층마다 옛 조상들의 일이 배어 있고 탑신(搭身)에는 장구(長久)한 연륜을 대변하듯 푸른 이끼가 고태 감을더해준다…
  • 6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701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휴식이며 애인이며 철학이다.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끝없이 보듬고싶은 내 강산의 뼈골이요 내 국토의 사리(舍利)이다.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따분한 일상에의 해탈이고 무한한 예시와 계시로 내 령혼을 인도하는 수련의 도장(道场)이다.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나를 젊게 하는 정신의 종합비타민이요.항상 나를 시심에 살게 하는 무궁한 설레임의 고향이다.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취미를 넘어서는 아름다움이고 애인을 넘어서는 그리움이고 종교를 넘어서는 성스러움이다. 좋은 수석은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시집이다. 수석이 주는 내밀한 아름다움, 그윽한 사색과 정려(靜慮)는 한권의 문학명작과도 비견된다. 아무리 읽어도 권태롭지 않고 늘 새로운 감동을 주는 책이 바로 수석이다. 늘 새로운 의미로 거듭나는 책이 바로 수석이다. 수석은 침묵의 잠언이요 꿈의 집합체이므로 그 문자는 암시로 씌여진 우주의 언어이다. 우주의 언어를 수신할수 있는 안테나가 필요하다. 그 안테나가 바로 시심이요 마음의 눈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수석이 지닌 침묵의 언어를 해독할수 있다. 나의 첫 일과는 돌과 말을 걸며 돌의 노래를 듣는것으로 시작된다.수반석에 솔솔 물을 뿌리면 경석(景石)들은 일시에 눈을 뜬다. 그 순간 내 령혼에 불이 켜진다. 심신이 화창해지고 심경은 급기야 아파테이아상태에 빠지고만다. 어떤 미묘한 기운이 나를 강타한다. 무량수 무량겁의 신비 저쪽에서 울려오는 신기한 북소리가 내 귀가에 전달되는 찰나, 마음의 주름살들이 죽죽 펼쳐진다. 일상에 눌리워 웅크린 세포마다 싱싱한 활력으로 넘쳐나 생명의 찬가를 높이 부른다.  좌대석도 소품석도 촌석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이다. 큰놈은 커서 압도적이고 작은놈은 작아서 앙증맞고 귀엽다. 물형석은 물형석대로 묘미가 있고 문양석은 문양석대로 환상적이다. 내 집에 찾아온 수석은 다 귀하다. 조금 모자라는 돌도 그의 장점을 찾아 곱게 봐주려고 노력한다. 깨여진 파(破)도 수석의 슬픈 운명이라 생각하면 온전한 수석보다 한결 더 측은해지고 더 정감이 가는 경우가 있다. 수석의 몸에 난 생채기까지 내 몫으로 받아들이고 수석의 흠결마저도 사랑하는 마음이 나의 수석사랑을 끝없는 곳으로 밀어주는 본질적인 힘이다. 홈채기에 앉아 깔깔대는 달빛을 따라가면 돌에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가령 수석을 몰랐더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황량하고 허탈할것인가? 얼마나 허랑방탕한 시간의 거품으로 내 인생은 흘러갔을것인가?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련인이고 로망이고 가족이다.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곡진한 몸벗이요 말벗이다.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성자이고 도(道)이고 스승이다.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정신의 기탁이고 령혼의 휴계소이며 유토피아이다.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생명의 최초의 모태이며 우주의 최후의 증언이다.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내가 추구하는 존재론적 법열과 리상향과 그 모든것을 초월하는 절대지존의 형상체이다.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시(詩)를 넘어서는 아름다움이고 나에게 있어서 수석은 상상을 넘어서는 무궁한 신비로움이고 나를 끝없이 매료시키는 신의 언어, 우주의 언어, 꿈의 언어이다. 수석을 만났기에 내 삶이 기쁘고 행복하고 풍요롭다. 그래서 수석이 좋다. 다시 태여나도 나는 애석인의 삶을 살고싶다/김학송  [연변일보] …
  • 5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497
    내 돌이 방방곡곡에                  - 유용준 -퇴근하면 동료들과 함께 술집으로 직행하는 일이 나의 취미생활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술로 인하여 붐의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오랜 고생끝에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나니 술은 입에 한 방울도 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체력도 다질겸하여 아침운동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새벽 다섯시쯤 일어나 새벽 안개를 가르며 달리기를 하고 깊은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영江의 맑은 물에 세수를 하다보니 이윽고 아침 이슬에 촉촉히 젖어 있는 돌의 피부를 보고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에 무한한 애착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산책길에서 돌아올 때면 돌을 한 두개씩 주워와 꽃밭가에 세워 놓았더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 때는 수석이 무엇인지 어떤 돌이 좋은지도 모르고 피부가 곱고 모양만 이상하면 무조건 주워다 마당가에 쌓아 놓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집사람이 점촌시장에 나갔다가 수석을 진열대 위에 장식해 놓은 것을 보고 와서는 나에게 한 번 가보라고 권했다. 며칠 후 나는 그 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다. 비로소 수석에 대한 멋과 맛을 조금은 알았다고나 할까 이 때부터 나는 시간만 나면 돌밭으로 향했다. 예전에 술집에만 앉아있던 버릇을 버리고 자연과 벗하여 탐석을 하다보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재미있기만 하였다. 나는 차츰 동료들에게도 권했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은 수긍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미쳤다고 놀려대었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며 수석에 대한 취미를 갖게끔 설득하였다. 내가 고생고생 해서 탐석한 수석들을 그들에게 한두점씩 주고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강조하였다. 마침내 그 들도 나의 설득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도 나와 함께 수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아끼는 돌 거의가 남의 소장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의 주위에는 수석을 사랑하는 동료들이 많이 모여들어 石情 石談을 나누는 좋은 자리가 항상 마련되어지니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나의 수석 300여점이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든지 가 있다 그 수석을 보관하고 있는 분들은 그돌을 한 번씩 감상할 때마다 나를 또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수석인들은 항상 마음이 통한다는 것일까. 나는 내일도 모레도 톰만 나면 돌밭에 가리라. 영원한 세월과 풍상앞에서도 굳굳한 그 돌의 기백처럼  (1979年 7 月〉 …
  • 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690
    10원짜리 동전의 행운                          권  명  진  몇 년째 수석을 한답시고 이곳저곳다니며 무척 애를 썼지만 이렇다할 名石은 쉽게 잡히지 않음에 새삼 수석의 길이 험 하고 아득함을 알 것도 같다. 학생들이 수학 공식 하나 알지 못하면 그 시험 문제의 답이 정확하지 못하듯 수석도 역시 어떤 알지 못하는 공식이 있는건가 ? 아뭏든 주먹만한 돌 하나 하나에서 꿈처럼 아릎답고 넓고넓은 마음의 고향을 그리게 한다.  어느 해던가 ? 무더운 계절의 생각이 떠오른다. 忠北 단양의 가곡으로 수금하러 가던 중 개눈에 무엇만 뜨인다더니 자연히 나의 발길은 돌밭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 뜨거운 띄약볕 속 에 눈물같은 땀방울이 온갖 나의 얼굴과 몸 전체를 솥안의 밥 을 뜸들이듯 뜸들이던 더운 날이었다. 오랫동안 탐석을 하다가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목욕이나 하고 갈까 하는 마음으로 강가의 넓은 바위에 앉아 웃옷부터 하나 하나 내던지듯 하는데, 쨍강 하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동전을 주우려고 바위밑에 고개를 숙였더니, 아니 ? 이게 웬 떡인가?  동전이 떨어져 있는 자리에 꼭 동물원의 코끼리와흡사한 물형석의 名石이 나타나니 말이다. 至誠이면 感天이라고 이것을 두고 한 말인듯, 오늘의 수확은 만점이라 생각하며 목욕을 하는둥 마는둥 그뜨거웠던 더위가 언제이던가 싶었다. 십원짜리 동전 하나로 크나큰 코끼리 한마리 를 잡았기에 행운을 십원권 동전에게 안기며 가벼운 마음으 로 발길을 옮겼다. '실례합니다. 잠깐 볼까요?'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 오셨읍니까?'한다.  이쪽 의사를 전달하였더니 검수 수첩을 보이며 내가 들 고 있는 가방을 보잔다. 어쩔 수 없는 파출소 연행의 몸이 되어 들어 갔더니 자연보호를 말한다. 나는 무척 당황하였다. 수석이 이렇고 저렇다 하며 사정사정 하다시피,아까운 코끼리 한 마리를 보호하기 위해 긴실랑이의 시간이 흘렀다. 그 바람에 막차도 놓치고 해도 저물었고 자지 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며 애쓴 결과 정다운 코끼리가 간신히 나의 품으로돌아왔다. 밤 늦게 읍내로 나가는 트럭을 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기에 말 못하는 코끼리에게 너하나 구하려고 고생이 많았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자리에 누웠다.  다음에는 어떤 돌이 어떤 식으로 나를 맞이하려는지  . ...  (1980年 8 月〉  이글은 1980년 12월 20일 발행된 애석가의 수필집 一生一石 에서 발췌한 것 입니다. …
  • 3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618
    다도해 섬마다 간직한 아름다운 비경을탐석지와 이어진 섬마다의 풍정도                                                               글: 이연근 해상경관이 뛰어난가경을보면금일도로 섬 전체가 들쑥날쑥 괴이한 형체로 이루어져 해안의 뻗어남과 움푹 들어가는 굴곡이 심하여 해상미의 경관이 가경이다. 섬 남쪽에 자리한 사동리 해수욕장은 고운 모래사장과 주위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산지는 금일읍 용출리로서 완도에서는 18km 떨어져 있으며 배를 타고는 2시간 동안 신지도의 해상풍광과 금일도의 해상미를 바라보며 지루하지 않게 올 수 있다 바닷가 산지에는 푸른 청석과 검은 묵석이 파도에 휘말려 물맛을 보고 모래에 거친 피부를 갈고 닦아 말끔히 목욕하고 덕망 있는 수석인을 기다리고 있다. 석질도 단단한 편으로 질감, 색감 모두 양호하다. 특히 이곳의 돌은 팬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돌 들로서 시흥을 돋구는 돌도 있다.  아스라히 떠 있는 먼 원산석의 유연한 능선의 곡선미가 아름답다. 드넓은 벌판에 아득히 보이는 작은 산, 평원석도 나오고 때로는 갚은 산 속 사슴이 마시고 간 옹달샘 같은 물고임돌도 보인다. 사람 형상의 인물석도 재미있다.     약산도부근의섬들  여름철 탐석도 하고 사동리 해수욕장에서 땀도 식히면 섬신의 피곤이 말끔히 씻어지리라 믿는다. 동백 향기 그윽함이 보길도 온 섬안에 섬 전부가 천혜의 아름다운 경관을 받아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은 상록수로 덮여 있다. 바닷가에 청청한 해송이 운치 있게 서 있고 이 섬의 동백은 옛부터 그 향기 그윽함으로 이름 나 있다. 완도에서 남해의 파도를 타고 장장 3시간 뱃길로 32km를 와야만 보길도 선창리에 정박하게 된다. 산지는 선창리 해변 일대로서 바닷가에 검은 먹돌을 위시하여 청석 그리고 줄무늬가 변화 있게 어우러진 돌 등이 딩굴고 있다. 석질도 야물고 치밀하며 색감도 좋은 편이다. 장구한 세월 거센 파도에 시달리고 모래에 씻기에 다듬어진 고운 살결의 돌들이 오늘도 여전히 파도 치는 바닷가에서 모래와 바닷물에 말끔히 세수하고 애석인을기다리고 있다. 형태별로는 멀리 아득한 원산형을 위시하여 평원석, 쌍봉,연산형도 나온다. 그리고 삼라만상과 흡사한 여러 모양의 형상석, 추상석 특히 줄무늬가 뚜렷하게 새겨진 문양석은 오랜 세월감을 느끼게한다. 해조읍의 낭만과 바람결에 흩날리는 동백향의 그옥함을 마시며 늘 푸른 해송 밑에서 탐석한 돌을 감상하면서 한대 피워 문 담배 연기 속에서는 풍류가 감돈다. 노화도 옥돌광산에서 추상적인 미석을 완도읍에서 배를 타고 남해 푸른 물길을 가르며 27km의 먼 항로 노화도 선착장까지는 2시간20분이 소요된다. 산지는 노화읍 선착장에서 마주 바라다 보이는 산으로 걸어서 15분거리 밖에 안되는 가까운 곳이다. 산에 오르면 옥돌을 캐내는 옥돌광산이 있는데 여기서 버린 돌 중에서 채취한다 색상이 화려하고 황홀하여 색의 오묘에 심취된다. 여러가지 색깔이 조화있게 어우러져 환상적인 회화를 보는 눈을 어리럽게 한다.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이 적절히 배합되어 어떤 추상적인 문양을 이룬 미석도 발견된다. 이 연녹색의 아름다운 미석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어떤 환상적인 연상을꾸미게 된다. 연록색 물결이 잔잔히 소근대는 호수 한가운데에 녹음방초 우거진 푸른 섬이 싱그럽게 떠 있는것같다. 새푸른 섬에서 이는 바람소리 새소리가 아련히 호숫가를 흔들면 환한 시정이 하늘에 닿고 연록색 이쁜 물빛을 그림에 담아보고 싶다. 여기의 돌은 자연마석은 거의 없고 원석을 가공하여 마석해서 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샌도 페이퍼로 갈고 닦을수록 아름답고 선명한 무늬가 되살아나는 즐거움에 힘든 것도 잊을 수 있다. 이 원석이 바닷가에도 드문드문 산재되어 자연미석을 운좋은날엔 채취 할 수도 있다. 해변에는 검은 먹돌과 청석 등 질좋은 수석감들이 널려 있다 여기서 게 잡듯 살살 뒤지면 재미나는 형상석과 때로는 산수미가 함축된 빼어난 경석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괴이한 괴석과 여러 개의 차돌이 한데 응고되어 어떤 형태를 이룬 묘한 형상석도 나온다. 소안도 비자리의 먹돌밭에서 이곳 지역은 지반이 큰 화산암층으로 덮여 있으나 지표가 너무 풍화를 입어 넓은 평야를 형성 시켰다. 특히 이 지역은 마그마의 관입시에 접촉 변질된 혼페러스(진흑석)가 분포되어 있다. 이곳의 돌은 진흑색의 먹돌이어서 질감,색감 이 뛰어나 안정된 중량감은 물론 깊은 심연에서 은은히 퍼져 배어 나오는 침묵의 소리가 들려오는듯한 유연스럽고오묘한 맛을느끼게 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산출된 검은 먹돌류에서는 가장 품위 있고 감칠 맛이 나는 돌이라 할 수 있다. 형별로는 주로 산수경석이 많아 원산석이나 평원석이 나오고 형상석도 재미있게 나오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어떤 형태미를 갖춘 돌을 탐석 한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꼭 그런 대로 까만 먹돌의 위력에 힘입어 귀하게 두고 간직할 만한 돌이된다.    여기 산지는 소안면 비자리에서 동북쪽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산지인 해변이 나온다. 반월형 으로 생긴 2km 남짓한 돌밭이 펼쳐져 있다. 이곳이 그 유명한 먹돌(오석 또는 진흑석)이 나오는 곳이다.  처음 이 산지에 가는 수석인들은 이 돌밭이 모두 검은 돌로 묻혔으리라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잡석이 많이 덮인 몽돌밭으로 실망이 앞선다. 그러나 차분하게 뒤져보면 이 잡돌 속에 먹돌이 묻혀 있거나 바위틈 사이에 끼어 있어 하나하나 뒤집고 파보아야만 보배롭고 간직할 만한 돌이 나온다. 그리고 이 산지는 바닷가이기 때문에 조수의 간만에 따라 돌밭의 면적이 크게 달라진다. 운이 좋아 썰물이 밀려 나가는 시기를 잡았을 땐 바다쪽으로 뻗어나간 광활한 돌밭에서 탐석하는 행운도 갖게된다. 교통은 목포에서 매일 오전 9시에 떠나는 배를 타고 진도를 거쳐 보길도를 지나 건너편 노화도에 들렸다가 소안도(비자도)에 배가 닿는다. 여기서 하선하여 동북쪽으로 15분 거리가 산지이다. 예쁜자갈이 덮여 있는 예송리 해수욕장 전국에서 유일하게 모래 대신 예쁜 자갈이 덮힌 해수욕장으로 완도군 노화읍 보길도 예송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완도읍에서는 남쪽으로 약 18km떨어져 있다. 바둑알 같이 작고 예쁜 잔잔한 자갈돌이 1.2km의 해변에 펼쳐져 있는 특색 있는 해수욕장이다. 오래 세월 몇만 년 두고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진 돌들이 매끈매끈하게 잘 수마되어 몸에 와 닿는감촉이 부드럽고 정감을 준다. 이 조약돌을 밟으며 해변가를 걷는 기분은 더 없이 상쾌하고 모래밭에서 못 느낀 조약돌의 추억이 오래 오래 남게된다. 파도가 밀려오고 나갈 때마다 돌 사이를 빠져 나가는 물소리 와 돌들끼리 폼을 비벼 나는 소리가 한데 어울려 바다의 교향곡이 조용히 울려퍼지듯 매우 인상적이다. 돌이 좋아 돌밭을 찾게 되고 그 돌에다 애정을 심는 우리 수석인들에게는 이 해수욕장이 전부 돌밭이기 때문에 탐석을 하는데 있어서 왠지 모르게 마냥 좋은 곳이다. 돌이 조금만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작은 콩돌(촌석)에서도 수석미의 탐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한 두점 손에 쥐고 매만지며 오는 것도 바람직한일이다 교통은 버스편으로는 광주에서 30분 간격으로 완도행 직행버스가 운행(소요시간2시간40분)되고 직통은 1시간 30분 간격 완행은 수시로 왕래하고있다. 배편으로는 완도에서 노화읍간을 쾌속선 싼플라워호가 오후1시,5λ130분 두 번 다닌다. 이구간은 1시간 30분 소요된다. 여객선도 수시로 운항하므로 큰 불편은 없다. 노화읍에서 보길도간의 통통배가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보길도에서 예송리 해수욕장까지는 마이크로 버스를 이용하면된다. 숙박은 민박을 전문으로 하는 민가가 많이 있다. 이곳은 식품이 귀한 곳이니까 갈 때 많이 준비하여 가는 것이 좋겠다.~펌   비자리 -望千里의 허허벌판이 광활하게 펼쳐진 地平線 너머에 보일 듯 말듯 가물가물 떠있는 몽우리들이 遠景의 極致美를 잘 表出하고 있다 바다처럼 넓은 購 훈한 大平原에 섬처럼 아련히 떠있는 情景은 답답한 가슴을 후련하게 열어준다. 遠近感과 거리감도 實景의 理致와 흘사하여 더욱 마음에 든다   자료: 월간애석 1999년 12월호에서 발췌…
  • 2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872
    탐석은 운과 끈기와 육감이라고 하는데 무엇보다 운이 따라 주는 것이 중요하다.석력이 몇 십 년 되었다고 해서 좋은 수석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갓 시작한 초심자가 좋은 수석을 더 많이 탐석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데 아마도 끈기와 인내의 결과일 것이다. 어떤 애석인은 운보다는 감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무리 운이 좋아 명석감이 눈앞에 있어도 감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은 많은 경험과 석력으로 체득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과 운만을 믿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좋은 수석감을 얻을 수 없다. 좋은 돌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모든 욕심과 잡념을 털어버리고 자연에 몰입하여 자기를 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탐석의 가장큰 매력은 자연과 동화되고 무심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가.산지를 알아야 한다.세상 어디를 가든 돌이야 있지만 그돌이 수석감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는 할 수가 없다. 돌도 나는데가 따로 있는것이다. 뒤에 산지도 소개하겠지만 산지에 가야 수석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마치 인삼밭에가서 인삼을 찾을수 있고 포도밭에가서 포도를 따먹을수 있는 이치와 같다고 할수 있겠다. 그러나 간혹가 다가 산삼이 발견되고 야생포도가 발견되듯이 인삼밭이아니고 포도밭이 아닌곳 에서도 삼이나고 포도가 나듯이 수석도 산지가 아닌곳에서 가끔씩 나기도 하지만 그런곳을 산지라고 일컫기는 무리가 있을것으로 본다. 본인도 산지라고 생 각되지 않는곳에서 애석수준의 돌을 탐한경우가 몇번은 있지만 그곳을 산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탐석 준비물군인은 전장에 나갈때 총을 갖고 나간다. 수석인이 탐석을 나갈때는 몇가지 준 비물이 필요하다. 몇가지 필수적인 준비물을 말하여 볼까 한다.이론을 숙지하고 나면 이제 현장과의 일치를 도모해보자. 강에 널려있는 수 많은 돌중에서 어느것이 수석감이 되고 못되는지 자신의 수석보는 눈을 시험 해 봄직도 하지 않겠는가?만마리 닭중에는 한마리학이 있고, 만가지 잡초중에 하나의 호피옆이 있을수 있다. 만가지 돌중에서 한개의 수석감을 찾기는 쉽지 않으나 언젠가는 모두 에게 一生一石을 찾을 날이 있을것이다.   준비물 : 꼬챙이,배낭,모자,장갑,신문지,물안경,장화(겨울탐석의 경우)이외에도 탐석하는 즐거움은 돌을 줍고 못줍고를 떠나서 자연과 하나됨을 느끼고 자연을 감상하는 그 맛도 큰 비중이라고 생각된다.나의 애석생활의 초반에는 돌을 못줍고 오는 날에는 괜히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마음은 없다. 오늘은 인연이 아니었다 보다 생각하면서 자연의 숨을 느낀것으로 만족한다. 석신님전에 드릴 소주 한병정도와 간단히 점심으로 먹을 라면정도면 탐석의 준비물은 족하리라 본다. 다.탐석 계획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순서가 맞지 않았을 경우 첫 단추를 잘못끼웠다고 들 하듯이 어떤경로로 탐석을 할것인가를 미리 정하고 간다면 효율적인 탐석 이 될것이다. 라.탐석현장에서 탐석의 행태후배들과 탐석을 나가면 후배들의 참 난감해 하는 말을 들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돌은 많은데 어떤돌을 어디서 부터 주서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검은색돌을 찾으라고 말하기도 하나 편법에 불과하고 좋은 돌을 얻기위해서는 많은 수석사진이나 전시회를 찾아다니면서 보는 눈을 키우고 자기보다 먼저입문하신 선배님이나 동우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이 보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탐석지에서의 탐석행태 를 알아보자.  (1)밭에서 김매듯이: 주전이나 일광같은 바닷가의 해석을 탐석하러 간경우에는 김매듯이 뒤지는 방법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김매듯 뒤지다 보면 수석감의 자질을 갖춘 돌을 만나 볼 수 있을것이다. (2)느낌이 좋은 곳으로 탐석을 많이 하다 보면 느낌이 좋은곳이 있다. 남한강과 같은 넓은 탐석지에 서 탐석을 할경우 위에서 처럼 김매듯이 한다면 다돌아 볼수 없을 것이다. 이런경우에는 포인트라 생각이 되는 곳을 집중 공략하는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탐석은 고도의 인지에너지를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탐석후에는 정말로 피로 함을 느낄것이다.  하나의 돌을 탐석하여 그돌의 연출을 생각하면서 탐석을 하는것이 좋다. 물론 좋은 돌은 느낌이 있지만 어디 그런돌이 흔한가? 어중간한 돌은 수반이나 좌대 에 올려 놓았을때를 생각하면서 탐석을 한다면 그 많은돌중에서 취사선택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것이다. 배낭의 무게도 줄일수 있는 방법도 될것이다. 마.강돌의 탐석요령강의 중류에서 강돌을 탐석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상류로 올라갈수록 거칠고 모가 난 돌이 많으므로 수석감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좋은 수석감은 강의 폭이 넓고 흐름도 원만한 중류 지대에서 많이 발견된다. 반대로 하류로 내려갈수록 돌의 모양이 차츰 둥글어지고 자갈이 많다. 강돌은 대개 모래나 흙으로 덮여 있고, 물 속의 돌은 물 때가 이끼로 덮여 있으므로 솔같은 것으로 씻어 보아야 형태, 색감, 돌갗을 확인할 수 있다. 모래 속이나 바위 밑 그리고 강기슭의 풀숲에서는 양질의 수석감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하나하나 끈기를 가지고 뒤집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폭우로 무너진 둑이나 홍수로 인하여 뒤집혀진 강바닥은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물줄기가 구부러진 지점과 강과 합류 지점에 비교적 양질의 수석감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바.탐석후의 뒷처리탐석하여온 돌은 마치 어여쁜 산골색시의 얼굴에 흐르는 꽤재재한 모습과 비 유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러므로 본색을 찾게 하기 위해서 돌에 뭍은 잡물을 제거한다. 이끼는 닦아내고 모래는 털어내고 하는등의 손질을 해주어야 한다. 그런후에 다시한번 좌대에 올릴돌인지 아니면 수반에 올릴돌인지를 판단해서 각각의 자리를 찾아주어서 연출을 해야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한 때는 물론 돌을 줍는 그 순간도 있지만 탐석한 돌을 깨끗하게 닦아줄때가 행복하다. 마치 새색시를 목욕시켜주는 기분이라면 웃을려나? 수반에 올릴 돌같은 경우는 물을 뿌려주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좌대에 올린 돌은 양석을 해야한다. 빠른 양석을 위해서 혹자는 콜드크림을 발라주기도 하지만 (어떤 모르는 사람은 돌에 니스를 바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절대 금해야 할 것이다.)살작 발라주는 것정도야 이해하는데 너무 덕지덕지 발라 서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경우를 볼수가 있다. 많은 수석관련잡지 책에서 혹은 수석가게에 들려서 보면 그런돌을 접할 때가 있는데 마음이 아프다. 일부 수석 애호가는 절대 기름은 안바르고, 바를경우는 실물성 기름,즉 잣 이나 호두를 돌에 대고 문질러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방법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스스로 탐석해서 돌이 하나둘 모여지면 멋진 석실을 이루는 것이다…
  • 1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5 조회 742
    수석취미 탐석기행 책(저자오양환) 수석의 개념   수석은 자연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자연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자연은 인공이 전연(全然) 가하여 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석을 사람이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미를 찾는 예술로서 자연 속에서 자연의 심미안(審美眼)을 찾아야 한다.   수석을 발견하는 것이나 감상하는 것은 우주 속에 존재하는 자연의 종합체로서 사람의 예술적인 감각과 시적인 정신세계의 경지에 도달하여야 한다. 수석을 두고 신이 창조한 예술품이니 자연이 만든 조형물이니 하며 우리 인간이 인공으로 가공하거나 창조할 수 없는 신비하고 오묘한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수석은 발견의 미학이지 수석 그 자체는 예술품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석을 발견해 내고 연출하여 미적인 아름다움을 창출하여야 한다. 그래서 수석은 동적인 면과 정적인 면에서 인간의 정신세계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여야 한다.  수석은 레저로써도 대중 속 깊이 파고들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성인병, 환경오염 등이 날로 심각해짐에 따라 자연의 향수(享受)를 달래려고 한다. 자연히 자연을 사랑하게 됨으로 정신건강과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 탐석(探石)을 즐기게 된다. 또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의 화합과 화목을 위해서도 좋다. 온 가족이 간편한 복장과 음식을 준비하여 도시 근교 강가에 가서 즐길 수 있는 레저이다.   수석은 찾는 것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수석에 깊은 지적인 학문이나 경험이 적은 초보자도 발견할 수 있으며 명석(明石)도 만날 수 있다. 또한 수석은 공간에 있어서 그렇게 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자연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 가령 작은방 어느 곳에서나 수석 한 점을 진열해 놓고 대자연을 감상할 수 있으며 자연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다.   수석 취미는 다른 취미보다 남는 것이 있다. 수석이라는 재산으로 후세에 가면 전래석으로써 가정의 가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가정의 화목과 건강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수양을 닦아 정신건강에 아주 좋은 취미다.  …
게시물 검색







Copyright © 수석넷.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