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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의 수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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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수석넷 댓글 0건 조회 220회 작성일 17-07-1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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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의 수석문화
 
<1960년대 - 수석문화의 태동기>
조선시대 화려했던 애석 문화는 일제 식민지 시대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오랜 시간 사실상 단절돼왔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에 들어서 서울과 부산에서부터 다시 수석 문화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60년대는 한국 수석문화의 태동기라고 볼 수 있다.
 
1966년 여름에 서울에서 故 韓基澤 선생의 주도로 옛 선비들의 애석 취향을 이어받은 노년층들이 石友會라는 단체를 결성한데 이어 66년말에는 文龍澤씨를 중심으로 대한수석회가 부산에서 결성이 되었다.
그 이듬해 4월과 11월에 문용택씨와 한기택씨의 개인 수석전이 부산과 서울에서 개최되는 등 처음으로 수석전시회도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68년에는 서울에 최초로 ‘돌바위’사가 운영을 한 ‘고사통’이라는 수석가게가 등장을 했고 이어서 부산, 대구, 광주, 울산 등지에서도 수석 가게가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처럼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수석문화가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애석가들의 신문을 통한 기고와 수석 관련 출판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만 해도 수석 인구는 매우 적은 편이었으나 장준근 선생이 수석에 관한 여러 책자를 발간한 것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수석인구의 저변확대가 시작되었다.
특히 장준근 선생이 71년에 쓴 ‘돌의 멋: 수석취미의 세계’는 최초의 수석 입문서로서 수석인구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시인이면서 애석가였던 朴斗鎭 선생은 ‘수석열전’이라는 시집까지 발간하기도 했다.

각 지역별로 동호회 결성이 활기를 띠었던 70년대를 거쳐 80년대 들어서면서 수석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수석 인구가 100만명으로 추산될 정도였으며 웬만한 집에는 한 두 개의 수석이 집안을 장식할 정도로 붐을 일으켜 취미 중의 취미로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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